Rookie or doctor

교과서적 원칙


이미 두 달 전에 연말 분위기는 낼 대로 냈고 나름대로 새해를 맞아 몇 가지 다짐도 했건만이곳 병원에서 나는 여전히 2011년과 마찬가지로 전공의1년차. 3월이 되어야 비로소 새로운 열두달이 시작되는 셈이어서인지 아직 마음은2011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2011내게 가장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가 된 것이다이제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돌이켜보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에 헛웃음이 나오지만앞으로 길고 긴(?) 여정에서 제 역할을 찾고 그 몫을 다해내기 위해 아직 초보 의사인 내게 필요한 중요한 일들 중 하나는 노동보건 문제에 대한 관점을 올바르게 세워나가는 것. 노동보건 운동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의사로서 실천할 수 있는 조직을 찾아 한노보연의 일원이 된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지난 1월호에 실린, ‘일터에서 꼽은 2011년의 열두가지 뉴스는 새내기 직업환경의학 의사로서 지난 1년을 곱씹어보게 했다. 아직 갈 길이 멀고여전히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 준 올해의 이런저런 의미있는 사건들.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의미있게 다가온 일을 첫번째로 꼽는다면 삼성 반도체 백혈병 2건이 법원으로부터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것이다이 판결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에서 다시 항소한 상태이고, ‘실제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아직 예측조차 힘든데다가 지금도 사업장 안에서는 미래의 피해자가 여전히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있을지 모른다아직 갈 길이 멀지만앞으로의 활로를 열어가는데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겠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접하며, 어떤 원칙을 가지고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하게도) 모든 활동과 논의가 앞으로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건강한 일터를 만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점이다.

또한, 노출 기준 이하라는 것이 절대 안전한노출 정도라는 것과 동일한 뜻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유해한 건강 영향을 보인 많은 연구들에서 그 측정 결과가 언제나 노출 기준을 초과했던 것은 아니었고, 일회성으로 측정되는 그 결과가 같은 노동환경의 다른 시간대를 대표한다고도 볼 수 없다. 그래서 수치로 표현되는 측정 결과만으로 건강영향을 평가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단순히 과학적 근거를 내놓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올바른 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것까지도 (당연히!)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해야할 역할인 것이다. 그 누구도 그러한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한 판단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야말로 직업환경의학 의사로서의 전문성이 결여되어있다는 말과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판단을 유보한다면 의사로서 직무유기가 될 수 밖에 없다.

덧붙여, 의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과학 지식은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된다. 그건, 오늘 참이었던 명제가 내일이면 새롭게 발표되는 연구결과에 의해 더 이상 참이 아닌 것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한 과학 지식의 불완전성을 간과하지말자. 그러하기에 과학적 근거, 그리고 그와 관련된 판단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할 것이다.

혹시나 내가 편협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해본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머릿속에 꼽아보는 이런 것들은 지극히 '교과서적'이다. (1년차 전공의인 내가 알고있을 정도로 기본적인 것들이란 의미다.) 이런 기본이 무시당하는 현실, 안타깝다. 물론, 그저 안타까워하기만 해서도 안되겠다.


(일터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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