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or doctor

sympathetic listener



2월 중순, 응급실 근무로 시작된 나의 인턴시절. 

인턴 전반기 6개월을 보낸 병원은 응급실에 레지던트가 없었다. 

인턴 다섯명과 스탭선생님들만 계셔서, 이제 막 의사가 된(심지어 아직 '의사면허증'을 받지도 않았을만큼 갓 의사가 된) 나같은 인턴들이 환자를 봐야했다. 기본적인 문진과 진찰을 하고, 의심되는 진단명에 따라 검사를 처방했다. 물론 때때로 환자들이 집에 가져갈 약을 처방하기도 했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거나, 기존의 만성질환이 악화되어 온 환자, 수시간 내에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 등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로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을 보는 건, 의학적 지식을 꽤 활용하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생각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엔 괴로운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응급실을 찾는 여러 환자들 중 비교적 간단한 처방으로 증상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져 다른 과를 거치지 않고  응급실에서 퇴원이 가능한 경우의 대표적인 예가 '급성 두드러기'였다. 페니라민 주사 한방이면 금세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냥 두드러기가 아니라 혈관부종(angioedema)이 겹치면 기도 점막도 부어서 호흡곤란이 올 수 있기 때문에 페니라민 주사를 맞고 나서 여유가 있다면 응급실에 머물면서 일정시간 이상 모니터링을 해야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숱하게 봤던 두드러기 환자 중에 호흡곤란이 온 환자는 경험한 적이 없다.아무튼, 급성두드러기로 여기저기가 가렵다고 오는 환자들은 꽤 간단하게 케어해서 집에 돌려보낼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주 초부터 양 팔꿈치가 벌레물린 것처럼 가려워서 조금씩 긁었는데 이틀이 지나니 팔다리는 물론이고 손, 옆구리까지 가려워졌고 가려움이 절정에 달했던 밤이 지나고 나니 눈꺼풀과 손이 팅팅 부어있었다. 유난히 왼손 손등과 손바닥이 가려웠던 지라 잠들기 전에도, 눈을 뜨고난 새벽시간에도 긁어댔더니 작은 상처들도 생겨났다.


금요일은 외부출장이 예정되어있던 날이었는데, 교수님과 방문하기로 한 곳의 담당자분께 양해를 구하고 피부과 진료를 받았다. 스테로이드(덱사메타손) 주사 한방, 페니라민 한방 맞고나니 가려움증이 사라지고 부기도 가라앉았다. 


응급실에서 이런 환자를 만났을 때, 초보의사인 나 스스로 케어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해 기뻐하거나 즐겁곤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렇게 간단한 처치만으로 해결가능한 문제로 찾아오는 환자들이 병원에 오기 전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주사 한방이면 드라마틱하게 (대개는) 좋아지는 그 증상이 병원에 오기 전까지 그를 얼마나 괴롭혔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비슷한 예로, 약에 대한 부작용도 그렇다.

진단에 맞게 처방된 약을 복용하다보면, 발생 가능한 크고 작은 부작용들이 있기 마련이다.

의대에서 수업 때 강조되고 단골 시험문제로 나오는 것들은, 주로 가장 흔한 부작용 또는 가장 심각한(그래서 주의를 기울여 환자를 봐야하는) 부작용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환자의 예후가 달라질수도 있는 부작용들은 특히 그렇다. 환자를 다시 볼 때마다 관련된 증상이 생기지 않았었는지를 꼭 물어봐야한다. 예를 들어, 소화기 출혈이 있을 수 있다면, 환자에게 대변 색깔이 변하지 않았는지, 복통이 없었는지 등을 물어볼거다. 멈추지 않는 소화기 출혈은 시술이 필요하고 최악의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으니까. 반면, 정신과 약에서 꽤 흔한 부작용인 입마름 증상 같은 것은 심하다고 해도 환자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거다.그래서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대체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개인차가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상대적으로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부작용이 환자를 얼마나 괴롭게 할 것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의사가 좀 더 나은, 좀 더 괜찮은 의사에 가까울 것이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의사에게 의미있는 덕목 중 하나는, 아니 의학적인 면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감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덕목에 있어서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환자 또는 보호자로서의 경험은 분명 의사의 공감능력에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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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이삭 M/D Reply

    꼭 의사-환자 관계가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끼리의 관계에서도 공감하기가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어려운 의학 지식을 갖춰야 하는 데다 나아가서 공감능력까지 갖추려면 의사로서 얼마나 힘들까요?
    그러니 보수를 많이 받는 것도 그런 면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렇지만 저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의사를 만나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의사 하면 일단 기분부터 나빠져요.
    저를 호구로 딱 알아보고 삥뜯으려는 의사도 만나봤고, 잘 모르면서 아이에 대해 엉터리 진단 내리는 의사도 만나봤고... ㅋㅋ

    얼마 전에 갑자기 위경련이 와서 약을 먹고 나아지긴 했는데, 생전 겪지 않던 약 부작용이 와서 열이 나고 속이 울렁거리고 아주 된통 혼났어요. 부작용 무섭더라고요.

    다 쓸데없는 소리고요.
    제가 직접 만나본 의사들 중에서 갈매나무님은 탑 클래스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ㅎㅎ
    아아...그나저나 어금니에 문제가 있어서 치과 가야 되는데, 생각만 해도 너무 괴롭습니다 ㅋㅋ큐ㅠㅠ

    • BlogIcon 갈매나무 M/D

      이삭언니. 살아계셨군요! *_*
      이틀전에 오랜만에 언니 블로그 갔다가 최근 포스팅이 이미 한참 전이라
      무슨 일이 있으신가, 했지요.
      제가 탑클래스라니. 이런 영광이... ㅋㅋ
      갑자기 제법 선선해졌는데, 건강 잘 챙기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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