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scene

매일 새벽 3시 퇴근... 이러다 죽을 수도 [시간의 재발견 ④] 과로사 간접 체험기

3년 전인가,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어쩌다 보니 마무리 단계 작업이 내게 몰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분명히 나 혼자 하기에는 벅찬 작업이었다. 결국 그 일은 내게 떨어졌고 혼자서 마무리를 감당했다. 기한이 촉박하게 정해졌던 일이라, 아침에 출근해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며칠간 지속했다. 

그 기간 동안, 집에 가서는 정말 최소한의 잠만 자고 다시 출근했다. 생애 처음으로(!) 식욕 저하를 겪으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지냈다. 몸은 피곤했지만 밤늦게 누워도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주말을 포함해 며칠간, 나는 '그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내 마음을 살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날의 순간들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한 가지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그 시기의 어느 날 새벽 퇴근길,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변을 향해 걷고 있을 때였다. 30m 정도의 거리를 그저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물론 실제로 숨이 막힌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겪어본, 숨이 막힐 듯한 느낌이었다). 심장이 갑자기 멈춰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과로사 하는 사람들이 사망하기 전 어떤 상태일지 짐작할 수 있었고,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더라도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나도 갑자기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별 탈 없이 그 일을 곧 마무리할 수 있었고, 결국 지나간 일이 되었다. 나는 원래의 적절한 출퇴근 패턴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이따금 하루 이틀씩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휴식 없이 며칠을 연이어 밤늦도록 일한 적은 다시 없었고, 숨이 턱 막히는 일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가' 없는 며칠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라는 인간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건이나 감정들은 완전히 배제된 채, 그저 최소한의 잠을 자고 최소한의 음식을 먹으며 그 외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정해진 목표대로 일하는 생활. 단 며칠뿐이었지만 그 동안 내 삶은 전혀 내 것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장시간 노동이 우리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그리고 많은 이가 장시간 노동을 하도록 내몰리는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과 여건에 대해 늘 관심을 놓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써 왔다. 장시간 노동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며,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중 한 가지라고 생각해왔다.

그 숨 막히던, 죽을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 후 나는 장시간 노동이 개개인의 삶과 일상을 얼마나 피폐하고 괴롭게 만드는지 이전보다 더욱 생생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강연이나 수업, 문헌 등을 통해 알아왔던 장시간 노동의 영향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들을 일부나마 몸소 체험했다고나 할까. 그 체험은 괴로움 투성이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그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 그 일 외에는 다른 것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그 자체였다. 

'느긋하게 밥 먹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소설책이나 주간지를 읽고 싶다'와 같은 소박하고 사소한 바람조차 이루기 힘들었다. 원래의 적절한 노동 시간을 유지할 때는 늘상 하던 일인데도 말이다.

또한, 다른 이와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눌 여유조차 없었으므로 그런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도움을 얻는 것도 힘들었다. 같은 공간에서 동료 여럿이 함께 일하고 있었지만, 그 중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은 나 혼자였던지라,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온 외로움과 고립감도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다행히 사려 깊은 나의 동료들은 내 어려움을 먼저 알아채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시도했다(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가까이서 지낸 동료에게서도 도움을 얻기 어려웠으니, 당연히 친구나 가족에게 하소연조차 하기 어려웠다. 정신 없이 시간에 쫓기는 동안 나 자신이 '일하는 기계'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꼭 필요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거나 경제적 대가를 충분히 받을 수 있을 테니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그런 상황을 견디는 것이 정말 괜찮은 것일까? 

아무리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일이라고 해도, 그 노동으로 평범하고도 소중한 일상을 무너뜨리게 된다면 바람직한 상황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 역시 분명히 사회적으로 좋은 목적을 가진 일이었지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시달리며 일상을 빼앗긴 나는 어느새 그 일이 지닌 훌륭한 가치 나 목적은 이미 잊어버렸던 것 같다.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저 내달려야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괴롭도록 일에 내몰렸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나는 한동안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가 지속돼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어느 정도 의욕을 회복하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약 일주일,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내겐 제법 깊은 생채기를 남긴 셈이었다.

일상이 무너진 노동, 그 삶의 주인은? 

그 후로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또다시 이전과 같은 괴로운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주어진 시간에 대해 좀 더 신중히 고려하게 됐다. 그나마 이러한 고려와 선택이 가능한 것은 내게 일에 대한 선택권이 있고 시간에 대한 통제가 어느 정도 허락된 덕분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팍팍한 사회에서는 비교적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저 며칠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활을 오래 지속해야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본다. 어쩌면 지금과는 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면서 어떻게든 견뎌냈을 수도 있다. 견뎌냈더라도 그 후 더 오랫동안 무력감과 회의감으로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결국 참다 못해 사표를 쓰고는 일터를 박차고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직장 생활을 하는 거의 내내 장시간 일하도록 내몰리는 많은 이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이 처한 상황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특정 업무를 약속한 기한에 맞춰 마무리하기 위해 단기간 동안 내몰리는 정도가 아니라, 낮은 임금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없이 훨씬 절박한 이유로 긴 시간동안 쉼 없이 일을 해야만 한다면, 과연 그 삶이 어떨지... 

내가 단지 며칠간 겪었던 여러 괴로움을 오래도록 감내해야 한다면, 그가 과연 그 삶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랜 시간동안 일에 얽매여 일상이 무너진 삶, 그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일터 7월호 및 오마이뉴스 게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27099&PAGE_CD=N0002&CMPT_CD=M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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