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inary scene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었다.

따라서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p.313

 

이 책의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제목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란 결국 모든사람은 존엄한 존재라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명제를 차근차근 독자에게 설득해나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목의 실격당한 자들이란 장애인을 뜻한다. 저자는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움직이는 1급 지체장애인이면서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이다. 하지만 이 책은 사회적으로 흔히 장애인에게 기대 또는 요구되는(?) ‘장애를 극복해낸 눈물겨운 이야기가 아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높은 지적 수준에 감탄했지만 그것만이 전부였다면 이 변론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정체성의 핵심 요소인 장애를 자신의 고유성으로 인정하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부각되어있진 않지만 책 전체에 그 과정의 치열한 고민과 통찰이 녹아있기 때문에 강한 설득력을 갖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가 들여다보지 못했던 세계, 전혀 몰랐거나 관심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비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들의 세계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갖도록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다고 배웠고, 헌법에도 나와있지만 다시 한번 존엄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정말 좋은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이 있다. 청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수어와 시각에 의지하는 삶의 존재 방식이 언제나 결핍은 아니라는 점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삶이 더 위대하다거나 더 가치 있다거나, 불편한 점은 거의 없다는 과장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소리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자의식을 전개하는 사람들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의 존재 방식과 언어적 풍성함을 간과하는 일임을 말하고 싶다. p.109

 

유전자진단기술을 통해 장애아를 걸러낼수 있는 사회는 해당 장애에 대한 의료, 사회복지 지출에 둔감해지기 쉽다. 그냥 걸러내면될 것을 굳이 낳아서 치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개인은 사회에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죄책감은 타당할까? p.116

 

사회복지서비스의 적용 대상을 판단할 때 의료적인 기준은 물론 중요한 참조 사항이다. 그러나 뇌의 기질적 병변과 그에 따른 신체 기능 수준이 의학적으로 어느 정도인지와 상관없이, 어떤 사람은 송국현처럼 27년간 시설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 사는 바람에 혼자 자기 몸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다. 그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와 무관한 신체 기능에 대한 판단만으로는 한 사람의 실질적인 삶의 조건과 역량을 이해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p.187

 

장애인에게 편의를 제공할 의무를 진다는 것은 그저 장애인을 배려하라는 말이 아니라, 장애인이 그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가지고 오랜 기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존중하라는 요구와도 같다.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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