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 voyage/India_2008

출발

가이드북을 읽으며 루트를 그려보거나, 인터넷으로 산 침낭에 쏙 들어가 누워볼 때면
여행 떠나기 전 특유의 흥분과 설레임으로 마음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그러다가도 인도여행 카페 게시판에서 혼자 여행은 말리고 싶다는 글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부푼 마음이 순식간에 뻥! 터져버리고 눈앞이 캄캄해지곤했다.
출발 전 몇일간, 하루에도 여러번씩 그런 싸인곡선을 오르내렸다.

이윽고 하루 전날이 되어, 엄마와 함께 (인도에서 자동로밍이 되는 기종의) 새 핸드폰을
사러 돌아다니고, 동생 방 가득히 물건들을 늘어놓고 짐을 싸면서 그런 기복은 점차 희미해졌다.

그날 밤, 아빠가 자꾸만 방문을 열어보시면서 일찍 자라고 재촉하셨지만 난 잘 수가 없었다.
배낭을 싸다보니 부족한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여지없이 드러나는 이 허술함...;;)
인도 여행 계획이야 애초에 세세한 계획을 세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별로 부족하다할만한 것이 없었지만 방콕 대기 시간이 16시간 정도라는게 문제였다.
그저 몇시간정도라면 공항에서 죽치다가 비행기를 타면 되겠지만 16시간은 그러기엔 너무 긴 시간이었다. 공항 근처에 좀 비싼 호텔에서 잘지, 아니면 방콕 시내로 들어가서 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공항으로 올지 결정해야 했는데 난 아직 그때까지도 결정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초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나쁘지 않은 가격으로 항공권을 얻었는데
계획을 잘못 세웠다간, 약간 비싸더라도 대기시간이 짧은 항공권을 택하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로 올라오기 직전 읽은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살짝 엿본 카오산로드-
여행자거리 특유의 국적불명의 북적거리고 산만한 그곳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방콕 스탑오버를 할 순 없었지만
(그럴 돈과 여유가 있었다면 차라리 인도 여행 일정을 더 늘렸을 거다)
분명 방콕에 내일 저녁에 도착하면 피곤할 것이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배낭을 싸고 밤늦게서야 그렇게 결정을 내린 나는
부랴부랴 방콕 쑤완나품 공항에서 카오산으로 가는 교통편에 대한 정보를 찾고,
카오산로드 주변지도를 출력하고,
또 한동안 마음 졸이실 우리 엄마를 위해 우리집 냉장고에 붙여둘 인도지도
(나의 대략적인 루트가 표시된)를 복사하는 등...
그렇게 뒤늦은 마지막 준비를 하다보니 어느덧 새벽 2시였나, 2시반이었나... -_-;


6시쯤 일어나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집에서 삼성역 근처의 공항버스 정류장 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인데도,
아빠가 차로 바래다 주셨다. 물론 엄마도 같이.

2년전 베트남으로 가던 날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그 때도 비슷한 비행기 출발 시간이라 깜깜한 새벽에, 엄마,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나섰다.
가락동 집 근처의 정류장을 못찾아서 결국 대치동까지 갔었더랬다.

이번엔 배낭을 매고 '잘 다녀올게요!'라고 씨-익 웃으며 집 현관에서 가족들과 멋지게 인사를
나누고 싶었는데, 눈이 꽤 내리고 길도 미끄러워서 굳이 걸어가겠다고 우길 상황이 아니었다.

8시반쯤까지 공항에 도착할 생각이었는데 길이 미끄럽고 차가 막혀 9시4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다행히 눈은 그쳐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마음은 한결 놓였지만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로밍센터에 들렀다가 받은 무료커피 쿠폰으로 커피를 마셨는데
그저- 마치 평소에도 종종 들리곤하는 코엑스같은 곳에 온 기분이었다.
비행기타고 멀리 떠나는 느낌이 아니라 지하철타고 가까운 어딘가에 가는 기분이었달까.
아무튼 이상하리만큼 무덤덤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0111 인천공항_sph-w3300 ; 여권과 돈만 있으면 떠날수 있다. 아, 물론 시간도.




10시 50분 이륙예정이던 TG629편은 활주로 제설작업 때문에 12시반이 넘어서야 날아올랐다.
어차피 한달이 넘는 여행 중 2시간 쯤 기다리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방콕 도착 시간이 늦어지는게 걱정스러웠다.

어쨌든, 그때부터였다.
여행의 시작이 비로소 실감 나기 시작한것은.
멀리뛰기를 하기 전 힘차게 뜀박질을 하듯이 기체가 덜컹거리며 활주로를 달리던 그 때.

아. 이제 정말 가는구나!


나는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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